본문 바로가기

사건과 신학 1기/3.1운동 100주년

3.1운동 100주년과 목소리 없는 사람들 / 박흥순

 

3.1운동 100주년과 목소리 없는 사람들

- 박흥순(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저 여인 하나 구한다고 조선이 구해지는 게 아니오.”
“구해야 하오. 어느 날엔가 저 여인이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지난 해 방영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최유진과 고애신이 나누는 대사 중 하나다. 일본군에게 폭행당하는 조선 여인을 구하려 나서는 고애신을 막아서며 최유진에게 반문했던 말이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배로 빼앗기고 잃어버린 나라를 구하는 일에 빈부귀천과 남녀노소가 없다는 외침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선뜻 나섰던 그 선택이 정말로 옳은 결정이었는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지금 여기에서 다시 묻게 된다.

   한국교회는 3.1운동 100주년을 어떤 방식으로 기념했는가? 한국교회는 당연하게도 연합해서 100주년 공동예배를 드리고, 기념 세미나와 심포지엄 그리고 창작 오페라와 음악회 등 문화행사를 진행했다. 청년과 청소년 참여를 독려하며 구국 기도회를 개최하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 삼창을 외치고 애국가를 불렀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100주년을 기념하며 3.1운동 당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며 자랑스럽게 기억했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특별하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한국교회와 성도에게도 특별하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 특별한 까닭은 그 정신과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특별한 방식과 관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는 특별했는가? 교단을 대표하는 목회자와 신학자, 학자와 전문가 목소리는 두드러지게 전면에 나타났다. 100년을 기념하고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는 중장기적 계획이나 프로젝트를 기대한 것은 순진한 것이었을까? 개인 영역에 머물고 있는 관점을 공동체 영역으로 확장하는 사회적 함의를 꿈꾸는 것은 비현실적인가? 최소한 3.1운동을 통해서 온 세계에 외치려고 했던 ‘정의(justice)’, ‘인도주의(humanism/human rights)’, ‘인류애(cosmopolitanism)’라는 핵심 가치를 확대할 수 있는 계획이나 행사가 한국교회와 신앙공동체에 구현되길 기대했다. 3.1운동 정신에 비추어본 한국교회 현실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성찰하고, 반성하길 바랐다. 하지만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는 3.1운동 당시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던 과거 기억을 다시 불러 되뇌며 감격해 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했던 대다수는 남성 목회자, 신학자, 학자가 그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3.1운동 당시 저항하며 해방을 꿈꾸었던 다양한 사람들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지식 계층이 독점했던 독립과 해방운동은 자연스럽게 신분이나 지식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확장되었던 것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학생, 노동자, 농민, 여성을 포함한 민중계층은 지식계층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민족 독립과 해방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았다. 분명히 학생, 노동자, 농민,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3.1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었다. 따라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간과 장소에 이 사람들 전면에 드러났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학생, 노동자, 농민, 여성으로 대표되는 민중계층이 주도하고, 기획하고,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가 미흡했다는 것은 정말로 커다란 아쉬움이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민감성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목회자와 신학자, 학자와 전문가가 독점해 왔던 중요한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다양한 시간과 장소’를 민중계층에게 양보하거나 연대할 수 있는지 묻고 또 묻는 것이다.

   사실 3.1운동은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한 관심을 촉구한 독립운동과 해방운동이었다. 3.1운동은 지식 계층과 신분이나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었던 축을, 학생, 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민중 계층으로 확장시켰다. 이와 같이 인식을 확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주변과 주변부 사람들을 주목하도록 이끌었다. 주변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또 다른 주변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를 결단하도록 요청했다. 주변부와 가장자리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결코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는 주변부와 가장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3.1운동은 계급, 성별, 신분, 인종을 초월해서 협력하고 연대해서 만들어 낸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3.1운동은 정의와 인권 그리고 인류애를 만천하에 알렸던 저항운동이며 평화운동이었음을 기억한다. 적어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는 ‘정의’와 ‘인권’ 그리고 ‘인류애’라는 핵심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계급과 차별을 넘어서 평화와 공존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3.1운동 정신이리라. 지난 3월 17일은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인천공항에 갇혀 난민 심사를 요청하는 앙골라 출신 루렌도 씨 가족을 포함한 난민과 이주민을 기억한다. 또한 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에서 총격 테러로 죽음을 당한 50명 희생자를 추모한다. 한국교회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려한다면 ‘정의’, ‘인권’, ‘인류애’라는 가치를 위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