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건과 신학 2기/미얀마, 광주, 5월 그리고 민주주의;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

미얀마 민주화 운동 / 신승민


신승민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제협력국장)

 

(* 본고는 「종교와 자유」에 기고했던 글을 바탕으로 다시 썼음을 밝힌다.)

 

먼저 죽음을 불사한 미얀마 국민들의 항거에 깊은 연대를 표하며 민주화를 외치다 쓰러져 간 분들과 그 유가족 위에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함께 하길 바란다.

 

미얀마 민주주의 실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물론 군사주위에 뿌리를 둔 군부독재이다. 그러나 영국 식민주의 지배를 거쳐 심화된 민족 간의 갈등이 민주주의 정착에 또 다른 걸림돌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우선 민족 간의 갈등에 대해 살펴보자. 미얀마에는 약 135의 소수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100년 이상 미얀마를 지배한 영국 식민주의자들은 미얀마의 다양한 민족을 서로 견제, 감시하는 “분리정책” (Divide and Rule)을 실시하여 민족들이 연합하여 식민정부에 대항하지 못하게 했다. 특히 영국 식민정부는 약 70% 이상을 차지하며 미얀마를 지배해 왔던 다수족인 버마족을 정부와 군대, 경찰 등 주요 요직에서 배제하고 대신 샨(Shan)족, 커친(Kachin)족, 친(Chin)족 그리고 카렌 (Karen)족 등의 소수민족들을 기용하여 그들을 통제했다. [각주:1] 이로 인해 버마족과 다른 민족들의 사이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고, 결국 해방 후 버마연방(현 미얀마 연방)의 건국의 과정에서 민족들 간의 통합이 연방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은 1947년, 소수 민족들의 온전한 자치를 보장하는 판룽조약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이 조약은 그의 암살과 함께 사장되었고 잠깐 동안의 민정은 1962년 군부 쿠데타로 막을 내리며 장기간의 군부통치의 서막이 열린다. 아웅산 수지 고문도 부친을 따라 2016년 제2 판룽조약을 선포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5년 선거에서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은 군부독재종식과 민족자치의 열망으로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NLD 정부는 이러한 소수민족들의 열망에 응답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로힝야족 대학살과 같은 인권유린사태를 방치하면서 소수민족들의 신망을 잃고 결국 정권 또한 잃고 말았다. 미얀부 군부는, 영국 식민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위기 때마다 이러한 민족갈등을 적절히 이용하여 다양한 민족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심지어는 같은 민족들 사이도 이간질하여 민중들이 연합하여 군부에 저항하지 못하게 하였다. 2월 쿠데타 이후 군부는 이미 몇 몇 소수민족 정당의 지도자들을 군정에 합류시켜, 연대투쟁의 동력을 차단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자치권 보장을 통한 민족들 간의 화해와 통합 없이는 결코 미얀마에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제도혁명이 있어야 하는데, 우선 군부에게 25%의 의석수와 정부 요직을 배정한 현행 헌법을 완전 폐기함과 동시에, 인구수의 약 30%가 넘는 소수민족들의 대표권이 의석수에 합리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196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행된 선거에서 소수민족이 기껏해야 9-12% 정도의 의석만 차지했다는 사실은 분명 현행 선거제도가 그들의 의회 진출을 제한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제도혁명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참회하는 것이다. 한 여성단체가 2002년 발간한“강간면허”(License to Rape) [각주:2] 라는 소책자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버마군이 샨 주에서 무려 600명 이상의 여성들을 강간하고 심지어는 살해까지 한 170여건의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 지난 60년 동안 군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수민족들을 상대로 상상을 초월한 인권유린을 저질러 왔으며, 최근 NLD가 로힝야 대학살을 방관한 것 역시 용서받지 못할 중대한 사안이다. 소수민족들의 한(恨)은 (버마족의)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회 없이는 치유될 수 없다. 이러한 참회 없이는 수지의 NLD가 정권을 다시 찾는다 해도 미얀마 민주주의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미얀마 민주주의 투쟁에 NCCK를 비롯한 종단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NCCK는 사순절기간 동안 미얀마 시위 희생자 유족들과 구속자들, 난민과 어린이들을 위한 한 끼 금식 헌금을 호소하여 많은 교회들이 참여하였고, 기독교 사회선교단체로 구성된 기독교행동은 매주 기도회와 일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교회는 아시아와 북미 교회들과 함께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협력의 틀을 만들어 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는 긴급식량 지원, 부상자 치료, 은신처마련, 법률지원 등을 조직하는 미얀마 주민 그룹들과 연대하고 있다. 미얀마 민주주의 투쟁에 대한 한국의 기독교의 이러한 깊은 연대와 지원은 그들의 투쟁이 70,80년대 군부독재에 항거한 우리의 역사적 경험들과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얀마 민주주의 연대를 통해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예언자적 상상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군부 통치는 군사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군사주의는 전쟁행위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가의 모든 요소를 군대에 종속시킨다. [각주:3]">https://namu.wiki/w/군국주의[/footnote] 국민들을 권위주의와 폭력을 통해 지배하며, 주권재민을 외치며 군부에 저항하는 이들을 체제 전복자로 규정한다. 힘과 폭력, 죽음의 문화가 사회에 만연하고, 생명과 존엄, 자유와 인권, 평등과 정의와 같은 가치들은 설 자리를 잃는다.

 

군사주의의 가치는 우리 기독교가 고백하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날 군부독재와 그토록 처절하게 싸워왔으며, 지금은 미얀마 민중들의 투쟁에 간절한 기도로 연대하고 있다. 긴 호흡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연대하기 위하여 지혜와 용기를 모을 때이다.

  1. Shelby Tucker, Burma: The Curse of Independence (London: Pluto Press, 2001), 32-33 [본문으로]
  2. https://www.peacewomen.org/sites/default/files/vaw_licensetorape_shrf_swan_2002_0.pdf 참조 [본문으로]
  3. 군국주의, 나무위키, 2021년 3월 21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