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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청년과 불안

청년과 불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40대 후반의 남자이다. ‘청년들의 불안’이란 주제를 가진 글들을 여는 글의 필자가 40대 후반이라는 것. 문제라면 문제다. 그리고 ‘불안’이라고 하면, 나도 남 부럽지 않게 불안하다. 40대 후반의 ‘불안’이라면 나도 할 말이 있다. 그런데 뚜렷한 대안은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또한 청년들의 ‘불안’에 대해 더욱 궁금해진다.

 

이번 호는 최대한 청년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이야기들을 담고자 하였다. 부족하나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앞으로도 <사건과 신학>은 청년들의 목소리와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이려 한다. 왜냐하면 결국 청년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은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할 일중의 하나는 기성세대의 인식적 한계가 청년들에게 주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히브리 성서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가인은 청년이었으나 청년이 되지 못했다. 창세기 2-4장에 따르면 아버지 아담으로 인해 가인은 저주받은 땅을 경작하며 땀을 흘려야 했다. 아마 불안과 분노가 가득했을 것이다. 땅을 저주한 하나님에 대한 불안과 선악과를 먹음으로 노동을 물려준 아버지 아담에 대한 분노였다. 가인은 열심히 땀을 흘렸지만 아버지가 물려준 인식적 한계, 즉 땅과 땀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아벨은 달랐다. 농부의 삶을 과감히 버리고 목동이 되었다. 정처 없이 불확실한 광야를 향해 가는 목동의 삶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다. 아벨이 걸어간 자기만의 길을, 그리고 그 길을 응원해 주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이번 <사건과 신학>에서 만나보시길 권한다.

 

<사건과 신학>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