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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3.1운동 100주년

삼일절을 지나는 사순절의 기도 / 이범성

삼일절을 지나는 사순절의 기도

- 이범성(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시편 69편 중에서) 

기독교회의 절기로 사순절로 접어든 시점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자니 삼일운동 기념일의 무게가 느껴진다. 백 번째 삼일절을 기념하는 수많은 기독교 행사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며, 어딘지 빈구석의 허전함이 밀려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회의 부일행각이 몇 번의 만세운동 참여로 상쇄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가?

교회의 종을 총탄과 대포알 제작용으로 내어주고, 장로교 감리교 명찰을 붙인 전투기를 헌납한 것은 대체 누가 한 일인가! 신사에 굴복한 목사들은 머리를 삭발하고 일본신도 승려들에게 이끌려 한강변에서 ‘미소기바라이’라는 소름끼치는 재 세례를 받았다. 교회의 변절은 민족문제이기 이전에 신앙의 문제다. 한국기독교는 민족교회가 되기 위해 굳이 민족주의자의 교회를 자처할 필요가 없다. 실상 한국교회의 민족운동은 민족주의가 한 것이 아니고 신앙의 역동성이 이루어낸 것이다. 나치 히틀러에 저항한 바르멘선언(1934)이 정치선언이 아니고 순수한 신앙고백이었듯이 말이다. 순수한 신앙운동이야말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산하는 법이다.

한국의 교회가 신앙을 지켰을 때 민족의 독립이 지켜졌고, 신앙을 버렸을 때 민족의 독립을 빼앗겼다. 한국교회가 민족의 교회가 된 것은 교회의 민족주의 때문이 아니라 신앙의 역동성 때문이었다. 삼일만세운동은 민족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복음신앙의 승리였다. 신앙이 제국주의 정신을 거부한 때문에 제국은 기독교를 눈엣 가시로 경험했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민족운동은 민족주의 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신앙운동의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민족적 변절 말고도, 먼저 신앙적 변절을 회개해야 한다.

삼일운동에서 기독교회가 크게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가 역동적 신앙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강압적 식민정부의 불편한 위협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당시 “일제에 저항하는 사람이 별 지나간 자리처럼 드물게 된 시대에 제국침략자의 정신이 관철되지 않는, 신앙의 영역을 확대. 지속해 가고”(당시 이승만의 관찰)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삼일절백주년 기념행사에서 허전함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백주년을 기념하는 한국사회가 삼일운동의 정신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3.1독립선언서의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말을 한국민족은 강대국에게 적용할 줄만 알았지, 약소국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수많은 인종차별이 한국민족사회에서 자행되고 있고, 경제적 기준으로 타민족을 우롱하거나 우대하며, 일본까지를 포함한 강대민족들에게 경제적 사대주의사상을 부끄러움 없이 표출하고 있다.

이것이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려는” 태도인가?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는 어디 갔는가! 심지어는 일제강점기에 최후까지 항일독립운동을 지속해온 자랑스러운 열사들의 후손인 조선족 중국동포들이 경제난민 취급을 당하면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곳이 바로 우리 한민족 사회가 아닌가! 

사순절을 맞아 “억눌린 민족의 양심과 사라진 국가 정의를 일으키려면”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 일련의 지나온 역사적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하나님 아버지, 
삼일운동 백주년을 지내도 나에게는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강대국에 약하고 약소국에 강한 태도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종교개혁 오백주년을 지내면서도 나에게는 신앙의 교만함이 가득합니다. 
교회의 직분을 계급과 권위로 생각하고 성도의 교제를 세상적인 서열로 바꾸어 놓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평양 대부흥운동 백주년을 지냈지만 나에게는 회개가 없습니다. 
회개 대신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자랑만 늘어놓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순절 주간을 지나며 기도하오니, 
전 인류가 함께 상생, 번영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권위는 섬김과 낮아짐의 권위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해주시고,
겸손함으로 아침마다 회개의 무릎을 꿇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우리 신앙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