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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한국교회 총회

한국교회 총회: 그 결의 과정과 구조 (종교인 소득세 관점에서)

한국교회 총회: 그 결의 과정과 구조 (종교인 소득세 관점에서)

- 최호윤(회계사, 교회재정건강성운동)

기독교계 언론과 일반 사회 언론에서 특정사안에 대한 개신교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주로 교단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기독교의 입장으로 다룬다. 이러한 상황은 입법/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유사한 사안에서 교계를 대표한다는 조직의 담당자를 만나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다. 해당 기구가 정말 기독교를 대표하는지, 누가 기독교 교계를 대표하도록 위임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교계를 대표하는 기구도 아니고, 설사 교계를 대표하는 조직이라고 할지라도 교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확보하지 못한 관계자들의 답변은 개인의 의견일 수는 있어도 기독교의 입장이라 할 수가 없다.

조직이 방대해지고, 구성원의 다양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한번에 집약하기엔 물리적 한계를 피할 수 없기에, 구성원의 의견이 집약된다는 전제하에 대의기구를 구성하여 위임받은 대의원들이 구성원들의 의사를 대변하여 전체적인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이 대의제도다. 총대들이 참석하여 결의한 결과를 교단 전체의 입장으로 정하는 교단 총회제도나 일반 사회에서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대의원이나 국회의원은 자신의 개인적인 관점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위임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대변해야만 한다는 필연적 당위성이 있지만 현실에선 구성원들을 무시한 의사표출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일반 사회에선 국회의원을 잘못 선출했다고 후회하면서 다음 선거에서 투표로 이러한 불만을 의사 표시한다. 일반 사회가 4년 단위로 대의기구를 재구성하지만 교계에선 지역교회, 노회에 참석하는 대의원은 목사와 장로에 한정되며, 목사직과 장로직은 임기제가 아니라 항존직이기에 설사 교인들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구성원인 교인들이 이를 바로 잡을 방법이 없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 이룬 교회는 각 지체들의 연합체 성격이고, 교회 구성원인 각 지체들의 아픔을 지체들이 서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러 지체간에 서로 돌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교단 총회에 참석하는 총대들이 본인의 개인적 판단을 총회에서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총회가 지체들의 필요와 아픔들을 공유하는 장이 되어야만 한다. 이는 교단 총회 이외의 기타 기독교 기구 조직에서도 동일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관점이다.

구성원들이 다양하고, 다양한 사안들을 논의해야 하는 교단 총회는 서로의 다름이 어울러져 한 몸이 되어 가는 방향으로 조율해가야만 한다. 사회는 투표라는 다수결의 원칙, 힘의 논리가 지배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논리와 규정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규정을 넘어서는 이해와 설득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망에 이르는 율법을 넘어선 사랑으로 우리에게 십자가로 찾아 오셨던 예수의 사랑이기 때문이고, 그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교단 총회 차원을 일반사회로 외연을 확장시키면 국회와 법률 규정을 생각하게 된다.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이 공청회와 국회의원들의 논의 과정으로 조율된 결과가 법률로 결정된다. 종교인소득세법은 그간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 끝에 2018년부터 개정 규정으로 시행되고 있다. 국가 구성원들인 국민의 합의를 기반으로 국회에서 결의한 개정 소득세법에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근로자가 아니기에 근로소득 명목으로는 세금을 낼 수 없다고 기독교 목회자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세법을 개정해서 기타소득의 한 항목인 종교인소득세 항목을 신설했다. 막상 종교인 소득세법이 신설되니 그동안 저소득 근로소득자 또는 사업소득자만 복지혜택으로 수령할 수 있는 근로장려금을 종교인소득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해서 막판에 종교인소득자도 근로장려금 또는 자녀장려금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이제부터는 종교인 소득자도 조건이 되는 경우 관련세법에 규정이 있으니 목회자들이 근로장려금 또는 자녀장려금을 신청하고 수령하는 것을 법적으로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근로자가 아니기에 근로소득세를 낼 수 없다고 했던 기독교가 막상 세금을 납부하게 되니 근로자가 아니지만 근로소득자가 수령하던 혜택인 근로장려금을 달라고 해서 수령하는 것에 대해 일반 사회의 마음은 불편하고, 돌아서서 기독교에 손가락질 한다.

각 지체들의 필요를 배려하지 않고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결정하였음을 앞세우는 교단총회 운영방식과 정책결정 과정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정확히 계산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십일조의 정신인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고 질책하셨던 예수님의 경고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예전과 달리 정관을 작성하는 지역교회들이 많아지고 있다. 정관은 구성원들의 마음이 모아진 교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문서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내에서 수많은 회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며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가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누군가 연구해서 일방적으로 선포하거나, 누군가가 작성한 표준 정관 또는 다른 교회가 사용중인 정관을 그냥 가져와서 사용하기는 쉽지만 동일한 관점에서 그러한 정관 규정은 교회 구성원인 교인들의 마음을 전혀 담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우리가 성취한 결과보다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관계에 방점이 있다. 우리가 소속되거나 접하는 다양한 조직단위의 의사결정구조에서 함 몸된 지체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 땅에서 믿지 않는 자들이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우리가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 논리적이고 절차적인 정당성을 확보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더 중요한 사랑은 상실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