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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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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 한주희 가족,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 한주희(대한성공회 여성선교센터/동대문교회) 이런 가족 필요 없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지난 해 5월 실시한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캠페인 문구다. '가정'과 '폭력'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로 된 이 '범죄'는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담장 밖에서 공론화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생각해보면 10년 전만 해도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남편에게 맞아 멍든 눈가를 달걀로 문지르며 마을 아낙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문제를 범죄로 인식하고 공적 영역에서 대응하고 있는데도 가정폭력 발생률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해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사랑으로'를 다시 부르며 / 박흥순 '사랑으로'를 다시 부르며 - 박흥순(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것 배고픔과 가난을 견뎌내지 못한 어린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모는 일하러 집을 비웠고, 집안에는 먹을거리가 없었다. 생활고를 비관하며 좌절한 네 자매는 극단적 선택을 했고, 세 살 막내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30년 전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서울 주변부에 처절하게 살았던 어린 네 자매에게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전국각지에서 성금을 보내며 응원했지만 곧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적극적으로 응답한 사람이 가수 해바라기 이주호씨다. 가슴 아픈 기사를 읽은 즉시 ‘사랑으로’라는 노랫말을 써내려갔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가사..
오월의 봄, 어머니의 집으로! / 이미경 오월의 봄, 어머니의 집으로! - 이미경(감리교신학대학교) 계절의 여왕이자 가정의 달인 5월, 나는 이 계절이 참 좋다.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들이 만개하기를 꿈꾸는 봄날은 언제 보아도 사랑스럽고 매혹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 아름다운 봄 날, 우리의 역사는 참 많이도 아프고 시렸다. 사월의 봄엔 제주 양민학살(4.3)과 세월호 침몰의 비극(4.16)의 소리가 들리고, 오월의 봄엔 광주민주화 항쟁(5.18)의 뼈저린 외침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오월의 울부짖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깝게는 불과 3년 전인 2016년 5.17 강남역 살인사건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범죄와 생명부재 의식의 심각성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했다. 작년에는 미투 운동까지 시작되었으니, 이쯤 되면 성차별 및 성폭력이 줄어..
소녀, 말을 건네다 / 송진순 소녀, 말을 건네다. - 송진순(이화여자대학교) 2019년 4월 27일, 전남 무안군 초등학교 근처 농로에서 여중생이 살해당했다. 다음날 아이는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고, 발목에 벽돌이 가득한 마대자루에 묶인 채 광주의 한 저수지에서 떠올랐다. 새아버지는 세 번이나 저수지에 다녀갔다.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는 경찰서를 찾았다. “동생이 죽기 전 엄마 아빠가 열흘 이상 집에 안 들어왔어요. 그런데 새벽에 엄마한테 전화가 온 거에요.” 의붓 언니가 말했다. “엄마가 엄청 힘들다고 했어요. 그 사람은 맨 정신으로 엄마를 때리고 동생을 때리고 그러니까... 애를 어떻게 해버리면 .... 동생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요. 저 사람이 너한테 해코지할 수도 있고 위험하니까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해라. 그래서 신변보호가..
[취지문] 부활의 약속을 믿고 꼭 기억하겠습니다 / 양권석 4월 사건과신학 취지문 부활의 약속을 믿고 꼭 기억하겠습니다. - 양권석(성공회대학교) 사월은 역설이다. 찬란한 봄, 꽃들의 향연을 바라보면서도, 깊이 새겨진 슬픔을 지울 수 없는 사월입니다. 산자락에 꽃이 붉게 물드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맺혔던 한이 터져 나온다 하고, 속절없이 꽃이 지는 광경 앞에서 수없이 쓰러져간 젊은 죽음들을 떠올리는 우리의 사월입니다. 사월은 역설입니다. 더할 수 없이 찬란한 봄이지만, 아직 이르지 못한 봄입니다. 겨울과 여름, 어둠과 빛, 옛 것과 새 것, 죽음과 생명의 길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산천을 두고 겨루는 사월입니다. 어둡고 추웠던 과거가 봄을 두려워하며 그 잔인한 발톱을 드러내는가 하면, 무수한 죽음들이 상처입은 십자가로 서서 새 희망을 합창하는 계절입니다. 사월의 ..
레퀴엠을 뚫고 소망을 노래하라 / 성석환 레퀴엠을 뚫고 소망을 노래하라 - 성석환(장로회신학대학교) 시인 엘리엇에게 4월은 '잔인한 달(the Cruelest Month)'이다. 현대사를 돌이켜보건대, 다른 어떤 이들보다 한국인들에게 더 잔혹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민주화가 이뤄지고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성장을 자랑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잔인성(cruelty)’은 날이 갈수록 그 강도가 더해가는 듯하다. 허나, 잔인한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고 부활로 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계절이기도 하니 그리스도인은 새 소망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 죄 없이 생명을 빼앗긴 이들, 말 못하고 소리 없이 사라진 이들,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제자도를 실천했던 이들, 그리고 그에 겹쳐 자기만의 유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으로 생명을 배신하..
저항하는 그리스도인과 4월 혁명, 그리고 부활절 / 강성호 저항하는 그리스도인과 4월 혁명, 그리고 부활절 - 강성호('한국기독교 흑역사' 저자) 4월은 이상하리만치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을 이룬 사건들이 몰려 있는 달입니다. 분단체제를 반대하며 발생했던 제주4․3사건(1948)과 자유당 정권을 무너트리고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쓴 4월 혁명(1960), 그리고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4․16 세월호 참사(2014)까지. 4월부터 6월까지 이어지는 기간은 그야말로 한국 근현대사의 박람회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4월은 가장 집약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역사 밖의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주체이다 보니 이 세 사건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제주4․3사건 때는 이북 지역에서 내려온 반공 청년들이 모여 만든 서북청년회가 무고한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