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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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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증거, 상처 / 한수현 살아남은 자의 증거, 상처 - 한수현(감리교신학대학교 강사) 상처란 말의 그리스어는 크게 세 개의 단어가 있다. 트라우마(τραῦμα), 몰로프스(μώλωψ), 그리고 플레게(πληγή)이다. 이 세 가지 단어의 의미가 잘 나타난 예를 들어본다면, 첫째는 사마리아인(눅 10:34)이 여리고에서 죽어가고 있던 이에게 다가가 기름과 포도주로 치료해준 상처(트라우마)이고, 두 번째는 고난 받는 초대교회 교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예수가 매를 맞아 상함(몰로프스)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나음을 얻었으며 이제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되었다는 본문(벧전 2:24)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집으로 간 간수가 그들의 상처(플레게)를 씻겨 준 본문(행 16:33)에 나온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부활, 또는 명랑이의 명랑한 하루에 부쳐 / 신익상 부활, 또는 명랑이의 명랑한 하루에 부쳐 - 신익상(성공회대학교) 우리 명랑이랑 둘이 광화문을 다 걸어 보네 살랑살랑 햇살이 겨울을 어루만져 잠재우고 이상하게 조용한 한낮 우리 명랑이가 은행에를 다 들르고 버스에 다 타 보네 저 인간이 맨날 어디 나가나 궁금했지? 뭐하고 다니나 궁금했지? 버스를 내려 비탈길을 걸어서 알지, 명랑아? 우리 집이지?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 네 계단, 한 층, 두 층, 세 층, 네 층, 다 왔네! 상자에 담겨 나갔다가 단지에 담겨 돌아왔네 아, 우리 예쁜 명랑이 …… 황인숙, 「우리 명랑이랑 둘이」(《릿터》, 2017년 5월호) 이 시가 주는 반전은 평범한 일상생활 한가운데 언제든 훅 들어올 수 있는 죽음에 있다. 작가는 햇살을 느끼며 광화문을 걷고, 은행에도 들렸다..
수난의 4월, 침묵하는 신(神) / 정길화 수난의 4월, 침묵하는 신(神) - 정길화(MBC PD, CP 역임) 달력장에서 4월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괴롭다. 시작부터 끝까지 수난과 희생의 연속이다. 들머리에 위치한 역사적 사건은 제주4.3이다. 오랜 기간 제주4.3은 금기어였다. 제주4.3은 71년이 지났건만 아직 변변한 이름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사태', '항쟁', '학살', '사건', '반란'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면서 우리 사회의 길항과 대립이 드러났다. 지난 4월 3일 국방부는 71년 만에 “제주4·3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실로 만시지탄이다. 4월 8일과 9일은 참담하다. 우선 1970년 4월 8일에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이 발생했다. ..
사월의 할렐루야 / 최영실 사월의 할렐루야 - 최영실(성공회대 명예교수) '할렐루야'를 부를 수 없는 사람들 사월, 개나리, 목련,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먼 산에 피는 진달래가 진홍빛으로 눈부시다. 시인 이영도 님은 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진달래’를 이승만 정권의 총칼에 의해 스러진 4. 19의 젊음 넋들로 노래하면서, ‘맺혔던 한이 터지듯 온 산하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고 피맺힌 울음을 울었다. 우리의 굴곡진 역사에서 억울하게 죽임당한 젊은 넋들이 어디 4.19의 ‘그들’만이었을까? 4.15 제암리 학살 사건, 제주 4.3 학살 사건, 4.9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 그리고 바로 5년 전, 304명의 무고한 생명이 속절없이 죽임당한 4.16 세월호 참사!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픈 역사의 사월에 교회는 부활절을 맞는다. 이..
[취지문] 삼일운동 100년, 우리가 바르게 기념하고 있는 것일까? / 양권석 3월의 선정 취지 삼일운동 100년, 우리가 바르게 기념하고 있는 것일까? - 양권석(성공회대학교) 삼일운동에 대한 다양한 기억과 해석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속한 집단이 삼일운동과 관련해서 잘했던 일들을 상기하며 자랑하고 기억하는 것도 얼마든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 앞에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그 엄청난 희생과, 그 희생을 제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 때문에도 그렇지만, 역사는 본래 우리가 해석하여 소유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누구도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없는 것이며, 언제나 거리를 두고 우리 앞에 서서 우리의 숨기고 싶은 것들을 비추어내면서,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요구하는 성찰의 거울이어야 한다. 삼일운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삼일절을 지나는 사순절의 기도 / 이범성 삼일절을 지나는 사순절의 기도 - 이범성(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시편 69편 중에서) 기독교회의 절기로 사순절로 접어든 시점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자니 삼일운동 기념일의 무게가 느껴진다. 백 번째 삼일절을 기념하는 수많..
2019 시대유감 / 남기평 2019 시대유감 - 남기평(한국기독청년협의회) 3.1운동 100주년이었다. 그랬다. ‘100’단위는 나름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그 날을 기념하느냐에 따라 의미하는 바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이번 개신교계 행사를 보면서,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100”이라는 아무 의미 없는 숫자였다. 재작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그냥 지나치고,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니 더욱 그렇다. 이번 3.1운동 100주년을 스쳐가면서, 우리는 독일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한 노력을 비교해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이들은 10년 가까이 500주년을 준비하면서 500년 전 역사의 흐름을 오늘날의 역사흐름에 빗대어 조명하며, 다양한 분야의 학술논의 등을 통해 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