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또는 명랑이의 명랑한 하루에 부쳐
- 신익상(성공회대학교)
우리 명랑이랑 둘이
광화문을 다 걸어 보네
살랑살랑 햇살이
겨울을 어루만져 잠재우고
이상하게 조용한
한낮
우리 명랑이가
은행에를 다 들르고
버스에 다 타 보네
저 인간이 맨날
어디 나가나 궁금했지?
뭐하고 다니나 궁금했지?
버스를 내려
비탈길을 걸어서
알지, 명랑아?
우리 집이지?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 네 계단,
한 층, 두 층, 세 층, 네 층,
다 왔네!
상자에 담겨 나갔다가
단지에 담겨 돌아왔네
아, 우리 예쁜 명랑이 ……
황인숙, 「우리 명랑이랑 둘이」(《릿터》, 2017년 5월호)
이 시가 주는 반전은 평범한 일상생활 한가운데 언제든 훅 들어올 수 있는 죽음에 있다. 작가는 햇살을 느끼며 광화문을 걷고, 은행에도 들렸다가, 버스를 타고, 비탈길을 올라 집으로 돌아오는 지극히 평범한 삶의 한나절을 “우리 예쁜 명랑이”의 죽음과 동행한다. ― 단 둘이서. 살랑살랑 햇살이 어루만져 잠재운 건, 어쩌면 명랑이였을지도, 아니면 명랑이의 죽음이 몰고 온 혹독한 겨울 같은 고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와 명랑이가 마지막으로 오롯이 함께 보낸 한나절의 나들이는 그렇게 애도의 시간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은 삼일이다. 신기하게도 이 기간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시간 간격과 같다. 말하자면, 삼일의 애도 기간은 정확하게 십자가에서 부활로의 이행 기간과 일치한다. 어쩌면 애도의 기간은 죽은 자의 부활에 걸리는 시간, 죽음의 죽음이 완료되는 데 걸리는 시간, 살랑살랑 햇살이 죽은 이와 산 이의 겨울과 같은 고통을 잠재우는 시간, 고통이 든 잠의 깊이만큼 새로운 삶의 힘이 자라나는 시간은 아닐까?
그렇다면, 애도의 기간은 지켜져야 한다. 부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십자가라는 고난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부활로 이어줄 기간이 필요하다. 요컨대, 십자가에서 부활로 넘어가기 위해서 애도의 기간이 시작되어야 한다. 십자가의 사무치는 아픔에 침잠할 충분한 시간과 그 아픔을 이겨낼 힘을 기를 넉넉한 시간이 절실하다. 개인적인 차원이건 사회적인 차원이건 우리는 고통의 굽이마다 애도를 감행해야 한다. 애도의 현장에 함께 모여 애도를 격려해야 한다.
그러니, 부활을 꿈꾸는 절기에 십자가를 애도하는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이하의 글은 졸고, “기독교가정, 용기있는 가난으로 가난을 넘어서다,” 『새가정』 711 (2018.06): 14-18.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고 이 글에 맞게 수정하거나 확장한 것입니다.)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낸 교회는 가난한 이웃들이 많은 동네 끝자락에 있었다. 관악산 줄기 한구석을 차지하며 나무숲 대신 빽빽하게 늘어선 판자촌 언덕을 내려가다 보면 산골짜기 맨 아래 동네에 웅장하게 들어선 교회를 만날 수 있는데, 바로 그 교회다. 성공과 성장을 강조하던 군사독재 정권의 시대에, 축복과 안녕을 바라는 가난한 이들의 소박한 소망이 이 교회를 향했고, 그래서 이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가난으로 뒤덮인 서울 변두리 판자촌 한가운데서 번영하는 교회를 다니던 나는, 상대적으로 덜 가난하다는 사실에 ‘나는 중산층이지’ 하는 착각을 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신앙으로 견디고 있었다. 성가대는 물론 교회학교 교사, 청년부 임원, 찬양팀 활동 등등으로 교회 생활에 빠져있던 내게 주일은 그야말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천국의’(그래서 이미 ‘부활한’) 하루였다.
그렇게 보내던 그 많은 주일 중 어느 날이었다. 중고등부 예배가 막 끝나고 점심을 하려던 무렵, 교회에 급한 전갈이 왔다.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시던 할아버지께서 고갯길 한가운데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소식을 듣기 무섭게 할아버지께서 쓰러져 계시다는 곳을 향해 달려 올라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텐데, 그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아니 무언가 ‘해야만 할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달렸던 것 같다.
판잣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좁은 오르막길을 달리자 길게 이어지던 판잣집들이 잠시 끊기고 작은 산등성이처럼 드러난 비좁은 경사로가 나타났다. 그곳이었다. 왼손엔 미처 떨어져 나가지 못한 지팡이가 달려있었고, 오른손 건너편엔 성서가 나뒹굴고 있었다. 양팔을 벌리신 채 그대로 앞쪽으로 고꾸라지신 할아버지의 그 모습은, 영락없이 예루살렘 성문 밖에 서 있는 십자가였다. 그 십자가에 달리신 이는,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그 누구도 아닌, 번영과 성장을 구가하던 교회 내에서 한 번도 이름 석 자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셨던, 예배를 드린 후 외롭게 판자촌을 오르시던 어떤 가난한 할아버지였다.
언덕길 오르막 방향으로 가난으로 얼룩진 달동네의 대지를 품듯 두 팔을 벌려 십자가를 지신 할아버지의 죽음을 등지고 내려다보면 또 하나의 십자가, 거대한 덩치의 교회 건물에 찰싹 붙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커다란 십자가가 보인다. 이름 석 자 알 리 없고, 일면식도 없으셨던 가난한 할아버지가 그려내는 십자가와 내 청춘 거의 모든 추억이 담겨있는 교회에 걸려있는 십자가 사이에서, 무언가 해야 할 만한 게 딱히 없었던 무력한 내게 벌어진 일은 죄책감에 휩싸인 혼란스러움이었다. 나는 그때, 왜 두 십자가 사이에서 영문도 모르고 혼란스러웠던 것일까?
그때의 혼란함이 던진 물음이 무엇이었던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렇기에 그에 대한 답 또한 무엇일지 짐작조차 못 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과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 그래서 그분의 앞모습은 전혀 알지 못한다 ― 내 이후의 삶에 하나의 화두로 계속 따라다녔다. 지금 이 순간도 할아버지가 그려냈던 십자가는 여전히 내게 화두다.
이 화두에, 지금의 상황과 입장에서, 하나의 선문답을 시도해 볼까 한다. 혹시, 화두가 던지는 물음은 이런 것 아니었을까? “무엇이 진짜 십자가인가? 무엇이 부활로 나가는 길인가?” 명랑이의 명랑한 하루 한나절은 이 물음에 답을 주는 듯하다 ― “애도가 필요한 십자가”라고.
4월이다. 수많은 명랑이가 기억의 수면 위로 떠 오를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4월 3일, 4월 16일, 4월 19일, …, 당장에 떠오르는 날짜만 해도 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만큼 수많은 십자가를 진 명랑이가 사회적 애도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애도가 필요한 십자가가 넘쳐나는 땅 한가운데서, 교회의 부활절은 너무 일찍 세상을 등진 것은 아닌가? 그래서 부활 없는 축제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애도에 필요한 시간은 부활절의 순간을 가로질러 더 멀리까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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