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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청년: 2021년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살아가는 일

청년(靑年), 2021년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살아가는 일

 

언제부터인가 매달 한두번씩 모여 그 달의 <사건과 신학> 주제를 선정하고 누가 글을 쓸것인지, 어떻게 쓸 것 인지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단골주제가 있었다. 눈치가 빠르신 분이라면 제목을 보아하니 무엇인지 알겠다 싶으실 것이다. 바로 ‘청년’이 그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청년을 이야기하는 수식어들을 열거해보면 그들의 신산한 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애와 출산을 포기한다는 N포세대라는 이름표가 붙더니,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리고 결국은 영혼까지 끌어내야만 주거를 장만할 수 있는 세대가 청년세대라고 한다. 매달 주제로 거론될 만 하다.

 

하지만 사건과 신학은 선뜻 청년을 주제로 선택할 수 없었다. 변명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저런 평가가 청년들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확신이 서지 않아서이기도 하며, 동시에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해서 분석하듯이 이야기하는 것이 바른 일일까?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그러는 동안 미디어와 정치권은 청년취업문제, 청년빈곤문제, 청년주거문제 등등 청년들의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왠지 미디어와 정치권이 정말로 청년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은 우리들만의 의심이었을까? 미디어와 정치권은 얼마전 있었던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을 승리로 이끈 주체로 20대 남자 청년들을 꼽고, 그것을 소위 ‘이대남 현상’이라 불렀다. 또 그들이 소위 ‘안티-페미’경향을 보이며 현 정권의 성평등 정책을 심판하기 위하여 정치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이 정말 그 현상을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분석인지 의심하는 것은 우리만의 생각일까?

 

그렇게 두세 달 정도를 흘려보냈나보다. 이제는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이 문제를 우리 곁에서 떠나보내기로 했다. 30대 청년이 야당의 대표가 되고, 20대 청년이 대통령 비서관이 되었다지만 청년세대(우리는 아직도 그 청년세대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라는 이들의 미래가 희망에 차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더 이상 고민해도 뚜렷한 답을 찾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정작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사자에 해당하는 이에게도, 또 그들보다 조금 일찍 사회로 나선 그들의 선배들에게도 글쓰기를 부탁했다. 그렇다. 이번 달 <사건과 신학>은 그저 듣는 소리가 될 것이다. 그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사건과 신학>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