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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대선정국, 외면당하는 낮은 목소리들

정책대결이 보이지 않는 기이한 대선 / 최 형 묵

 

최 형 묵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이번 20대 대통령선거는 역대 최고의 ‘비호감’ 대선으로 불릴 만큼 부정적 시선이 따갑다. 유력 후보 본인들의 개인사와 공직에서의 역할을 둘러싼 도덕성 문제, 배우자의 문제가 부각되고, 여기에 대통령 후보자에게서 보기 드문 극언과 실언, 각종 구설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바람에 정책을 겨루는 선거 본연의 성격은 사라지고 상대 후보를 향한 인신공격성 의혹제기가 두드러지고 있다.

 

정치인을 향한 높은 도덕성의 요구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러 정치세력이 경합하는 민주적 헌정국가 안에서 정치인에게 정말 요구되는 덕목이 무엇인지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여러 사회 계층과 세력들이 갈등하는 현실에서 다수의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정책 실현의 의지와 예측,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향하는 정책 제시와 그것을 실현할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임윤리의 차원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은 한국사회의 미래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할 때이다. 이른바 추격국가로서 경제성장에 몰입해왔던 시절을 지나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으로서 선도국가의 역할을 맡아야 할 때이다. 한국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주화를 일궈냈지만, 그 명암이 너무나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번 대선은 그 한국사회의 미래를 전망하는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첫째 세계 공통의 과제로서 기후위기에 대응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절실한 과제이다. 현재 민주당과 정의당의 후보에게서 이와 관련한 의미 있는 정책들이 제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경제성장의 연장선상에서 기술주의적 접근의 한계 안에 있어 기후위기에 대응한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후위기는 단지 생태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체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체제 전환의 가능성을 함축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것은 대다수가 절박하게 체감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과제이다. 선거 국면마다 등장하는 경제위기의 논리는 기만이요 허구이다. 문제는 불평등이며, 따라서 사회적 위기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자본소득분배율보다 노동소득분배율이 현저하게 차이나는 것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지만, 한국사회는 그 격차가 유난히 심하다. 여기에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인한 격차까지 더하면 불평등의 정도는 더욱 심각하다. 그 불평등의 심화로 야기되고 있는 사회적 위기에 대처하여 한국형 복지국가를 모색해야 한다.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의 확대 또는 기본소득은 양자택일의 사안이라기보다 충분히 수렴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만큼 그 실현과정에서 적절한 모형을 형성할 수 있다. 여기서 국가 재정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 것인지도 중요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셋째 사회적 불평등에 편승하는 사회적 차별의 극복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이른바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의 위상 전환의 과제는 경제적 성장의 차원으로 국한될 수 없다. 구성원 모두가 안전한 삶을 보장받고 존중받는 사회를 형성하는 과제를 포함한다. 예컨대 인권선도 국가로서의 역할을 포함한다. 한국사회는 불평등구조에 따른 심각한 노동의 위기와 차별은 말할 것 없거니와 성차별 양상 또한 세계최고 수준에 해당한다. 여기에 더하여 이주민ㆍ장애인ㆍ성소수자 등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역시 심각하다.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지 15년이 지나도록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보여주듯, 누구나 안전한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는 뒷전으로 밀려 있고 오히려 혐오의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사회적ㆍ정치적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마저 안고 있다.

 

넷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은 두말할 것 없는 숙원과제이다. 분단상황은 부조리한 체제와 현실을 정당화는 구실이 되어 왔을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실로 심각하다. 역대 민주정부하에서 일관된 남북화해의 시도, 그리고 가깝게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이어진 일련의 정상회담은 평화정착의 기대를 높여주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너지고 지금 남북관계는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지경에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며 안보불안 심리에 편승하려는 정치세력이 득세하는 판이니 상황은 더욱 난망하다. 일관된 평화의 의지와 더불어 담대한 상상력으로 남북관계를 타개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다섯째 대한민국의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이 단순히 국력의 위세를 과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견국가로서 평화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거 강대국의 세력 각축이 벌어지는 최일선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늘 어려운 선택의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과거 불리했던 그 요인을 능동적인 역할을 펼치는 지렛대 삼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특별히 신냉전체제로 불리는 국제적 역학관계 안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친미 또는 친중 가운데 어느 일변도로 그 역할을 맡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남북간 평화 정착을 위한 일관된 노력 가운데 국제관계 안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끝으로 그 과제들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내적 조건으로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강화를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5년 전 촛불민의를 따라 새 정부가 구성되었을 때만 해도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낙관적 기대를 안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우익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상황에서도 예외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을 안도하였다. 그러나 촛불정부로 일컬어졌던 정부하에서 이렇다 할 만한 개혁적 성과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면 결코 안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재벌, 금융, 행정, 사법, 언론 등 여러 분야의 선출되지 않은 전문가들이 선출권력을 무력화하는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실상은 현재 대선 후보대결에서까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기득권 카르텔의 한 축을 맡은 세력이 정부의 무능을 앞세워 표심을 동원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을 강화한 세력이 오히려 공정을 내세우며 의기양양한 꼴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기반 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민의 기본권과 대표권을 강화하며 동시에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이 절박하게 모색되어야 한다.

 

산적한 과제들이 많지만 대략 큰 그림의 윤곽을 그리는 정도로 그 과제를 예시했을 뿐이다. 현재 대선 국면에서 어떤 정치세력도 이런 정치적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전혀 없지 않으나 그것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언론 탓만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일이다. 만일 그저 도토리 키 재기와 다름없는 공약들만 견주는 가운데 편 갈라치기로 대선이 귀결된다면, 어떤 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든 그 결과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정치세력이 짜놓은 구도 안에서 세력을 결집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구도 자체를 뒤흔드는 역할이 절박하게 요청되는 상황이다.

 

NCCK 에큐메니칼 신학 세미나 <20대 대선을 맞아 - 교회와 정치에 대하여 묻고 답하다> 자료집
'교회와 정치에 대하여 묻고 답하다'자료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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