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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대선을 통과하며 느꼈던 감정의 흐름들

정치, 종교적 열광주의를 버려야 산다 / 김상덕

 

김상덕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

 

시끄러웠던 제20대 대선 일정은 막을 내렸지만, 난 여느 때와 같이 무거운 몸과 더 무거운 마음을 신발에 욱여넣고서 출근길을 나서야 했다. 서대문역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어제까지 그렇게 시끌벅적하던 곳이었지만 어느새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단지 조금 조용해졌을 뿐이다. 조금은 이상한 ‘일상으로의 회복’이 생경하지만 나쁘진 않다. 어제까지 이 거리를 가득 채웠던 유세현장의 고함과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을 향해 갖가지의 추파를 던지던 몸짓들, 신호들, 휘날리던 현수막과 반짝이는 전광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니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거리가 조용해지고 나니 조금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마치 우리 인생을 다 책임져 줄 것처럼 자신을 믿어달라던 마치 스무살 설익은 구애와 같았던 그 유세는 정말 믿을만한 것이었을까? 경쟁 후보가 집권하게 되면 당장이라도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으름장을 놓던 정치의 말과 몸짓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이제는 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선거는 종교적 열광주의와 유사하다. 유세현장 속 정치인은 목사요, 그들의 말과 행동은 설교와 같다. 유세현장은 종교 집회를 떠올리기 충분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비슷한 고민과 걱정, 관심사를 공유한다. 현실의 고통과 미래의 불안과 염려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들에게 선거란 정당과 정책을 둘러싼 이권 다툼의 수단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특정 후보를 (그렇게나 열광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그(녀)가 오늘의 고통을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신앙)과도 같기 때문이다.

 

고통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누구도 쉽게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옛 거짓 선지자들이 그랬듯이, 종교적 열광주의는 현실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나누고 ‘우리가 이렇게 고통당하는 이유가 바로 저 악한 적들 때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문제는 이 고루한(혹은 고약한)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특히 한 사회의 고통과 불안이 클수록 사회 구성원은 그 분노를 누군가에게로 돌리길 원하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저성장 국가로의 전환기, 그에 따른 청년 실업과 노인빈곤 문제, 무엇보다 팬데믹이라는 재난이 장기화됨에 따라 각계각층이 고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만일 어떤 정치인이라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또는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분노와 불안을 이용하여 세력을 규합하고 표를 얻으려고 했다면 그것은 종교적 열광주의와 다름 없다. 상대 후보와 진영을 비난함과 동시에, 정작 자신은 그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며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분홍빛 희망을 약속한다. 사실 그런 약속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말뿐인 공약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이다. 이번 선거는 국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직능적 역할보다 지지자들의 감정(분노와 슬픔, 불안과 염려)을 분출해줄 상징적 역할을 찾는 듯이 보였다. 정치에도 마음이 있다고 하지만, 마음은 곧 역량은 아니다. 또한 긍정적 마음이 작용할 수 있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이번 선거에서 두드러진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종교적 열광주의의 폐해는 그 초점이 종교적 집회에만 집중되고 그 이후의 일상의 삶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종교적 황홀경에 빠져 동질한 집단 안에서의 소속감과 만족감을 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집회는 끝났고 황홀경도 사라지고 이내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현실의 고통도 여전하며 미래의 불안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기도한다고 해도 책을 펴서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에 통과할 수 없듯이, 아무리 열성적으로 정치인을 지지하여도 우리 삶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 한 말이다.

 

이번 선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의 정치가 종교적 열광주의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기독교적 지혜와 전통은 우리가 종교적 열광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신앙의 뿌리가 튼튼하고, 현실에 기반한 믿음과 실천의 균형을 가르쳐왔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 국민들이 더는 종교적 열광주의와 같은 거짓 정치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유권자 개개인의 민주적 시민의식과 소양이 중요하다. 특별히 오늘과 같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공론장에 들릴 수 있도록 바뀔 필요가 있다. 적어도 연령, 지역, 성별 등을 갈라치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더 이상 특정 정치인과 정당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정치’, 시민의 역량이 한 국가의 진짜 힘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겠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정치가 종교적 열광주의로부터 멀어지고, 조금은 차분하고 성숙한 태도로 한국의 복잡하고 불확실한 사회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길렀으면 한다. 나아가 국민 절반이 갈라져 서로를 비난하고 불신하는 일을 멈추고 상호 신뢰와 연대, 희생과 섬김으로 공동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념적 대립이나 선과 악 방식의 적대적 정치 구도는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작별을 고하고,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한 가지 입장을 강요하기보다 충분히 설득하고, 힘을 합쳐 분열의 정치에 저항하고 상생의 정치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