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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대선을 통과하며 느꼈던 감정의 흐름들

그럼에도, 저 깊은 곳에는 / 송진순

 

송진순 (NCCK 신학위원)

 

20대 대선이 끝났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초박빙 승부에 모두가 깊은 내상을 입었다. 선거 이후 만나는 사람들도 선뜻 말하기를 꺼렸다. 실은 말 이전에 어떤 감정을 쏟아야 하는지 망설이는 듯했다. 이 상황에 대한 날 선 비판이나 섣부른 자성이 아니라 상황을 수용할만한 마음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마음 둘 자리조차 잃었다. 얼마 전 한 시사평론가는 “2012년 대선과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좌절이었지만, 지금은 위로가 필요하다”고 한탄했다. 그때는 박정희 레거시라는 큰 벽에 부딪히면서 좌절했지만 결과는 수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정치와 공동체의 바닥을 보며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20대 대선은 유세 과정에서부터 실망스러웠다. 아니 마지막까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여당은 비주류 인물이 대표가 되자 주류 세력과의 내홍으로 출렁거렸고, 야당은 정권 심판과 권력 탈환에 집착하여 비방과 갈라치기로 세력을 모았다. 양당 후보는 각 당의 가치나 비전을 체화한 인물들이 아니었기에 정당의 힘에 기반한 정책과 비전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로 정당이 아니라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세력 간 양극화와 노골적인 네거티브에도 높은 투표율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역대급 비호감 정치에 넌더리를 쳐도 정책이나 비전이 아니라 상대 당의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경쟁하듯 결집했다.

 

대선 이후 독선과 아집으로 폭주하는 ‘국민의힘’이나 성찰이나 자정은 엄두도 못 내는 ‘민주당’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분노 대신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양극화와 불평등의 우선 과제는 덮어두고, 사람들에게 당장의 먹잇감을 던져주며 극단의 감정만 부추기는 형상이다. 여성과 장애인의 존재는 지우고, 청년과 소상공업자의 위기감에 불을 지피고, 부동산 부자와 대기업의 욕망에 기댄 채 기득권 수호에만 혈안이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선거에서 철저하게 실리를 선택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낡은 레토릭을 몰라서도, 대중을 경멸하는 모욕을 듣지 못해서도 아니다. 정치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이다. 자칭 보수라 하는 ‘수구’와 자칭 진보라 하는 유랑하는 ‘보수’가 저지른 선동과 증오가 이 사회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하여 우리 안에 수많은 분열과 균열의 상처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은 정부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걱정하는 시대다. 촛불을 들었을 때 우리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분쟁과 갈등이 있어도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포용력이 마련된다면, 그것이 우리 정치의 신뢰와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말이다. 그런데 정책이 옳고, 방향성이 맞아도 이를 풀어가기 위한 정치 이행의 과정은 너무도 거칠었다. 시민과의 합의나 논의 과정은 거의 없었고, 국가는 거대한 하나의 소리만 울렸다. 그렇게 정부는 몸집을 키웠고, 시민과 시민운동들은 탈각됐다. 정부의 실정과 여기에 침해받고 상처입은 사람들, 그리고 권력욕에 눈먼 이들이 이번 대선의 결과물이다. 정치적 예견들이 뻔한 결말을 향해 치달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실망과 분노를 넘어 무관심과 이해타산 속에서 자맥질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저 깊은 곳에 진심을 향해 언제든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있음을 믿어본다.

 

종교는 세상 끝에 관한 이야기다. 종말을 예견하며 희망을 전함으로 현실을 살라는 것, 그것이 종교다. 두려움이나 희망이 비관적인 상황에서 태어난다는 점에서 그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그러하기에 희망은 단순히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종교가 희망 (그 선택)을 말하는 이유는 희망의 상상력이 사람들을 목표를 향해 행동하도록 추동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막연한 희망보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불안을 조절하고 안정감을 찾는 데는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희망에서 시작된 것이 냉소와 절망으로 끝난다 해도, 그것은 사람의 근본을 흔들어 깨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각주:1]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고 세계를 변혁하는 것, 그것이 희망의 힘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종교가 자기 역할을 잃고, 정치가 자기 가치를 휘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깨어진 말들이 횡행하고 삭막한 마음들이 날을 세워도, 다시금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소리가 들려온다면, 우리는 마음을 열 준비가 돼 있음을 안다. 마음과 마음을 고르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희망의 정수박이를 들어 올릴 진심의 시간이 간절하다.

  1.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임현경 역, 알에이치코리아, 202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