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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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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저 깊은 곳에는 / 송진순 송진순 (NCCK 신학위원) 20대 대선이 끝났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초박빙 승부에 모두가 깊은 내상을 입었다. 선거 이후 만나는 사람들도 선뜻 말하기를 꺼렸다. 실은 말 이전에 어떤 감정을 쏟아야 하는지 망설이는 듯했다. 이 상황에 대한 날 선 비판이나 섣부른 자성이 아니라 상황을 수용할만한 마음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마음 둘 자리조차 잃었다. 얼마 전 한 시사평론가는 “2012년 대선과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좌절이었지만, 지금은 위로가 필요하다”고 한탄했다. 그때는 박정희 레거시라는 큰 벽에 부딪히면서 좌절했지만 결과는 수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정치와 공동체의 바닥을 보며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20대 대선은 유세 과정에서부터 실망스러웠다. 아니 마지막까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여당은 ..
정치적 내전의 도덕적 등가물 / 정경일 정경일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대선 며칠 후, 내가 조사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연구 단체에서 대선 평가 토론을 제안해 왔다. 몸과 맘이 피폐해 있던 때라 내키지 않았지만,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지 않으려는 기획자의 열정과 회복탄력성이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토론 제목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대선관전평’... 물론 스포츠 경기나 정치적 선거 후에 관전평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후보 간, 정당 간, 국민 간 정치적, 심리적 대립과 갈등이 너무 격렬해서, 나를 비롯한 토론자들의 이야기는 ‘관전평’이 아니라 ‘참전담’일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당락을 가른 결과도 0.73%p 초박빙이어서, 승전담도 패전담도 내상 없이 꺼내기 어려웠다..
이‘놈’의 대선: ‘남혐’ 상상하기 / 김정원 김정원 목사 (향린교회, 성공회대 박사과정) 근래 “너- 남혐있어?”라는 물음을 종종 듣곤 하는데, 그 물음에 답하기 전 그 사람의 저의를 예상해본다. 이자가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은 ‘너 페미니스트야?’, 혹은 ‘너 설마 심상정 찍을꺼야?’, 그것도 아니라면, ‘너 목사가 돼가지고 세상의 반을 혐오하는 거야?’, 마지막으로는 ‘싸우자’ 정도. 대개 그들의 저의는 나의 예상 중 하나 이상에 부합한다. 저런 물음은 보통 혐오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데서 온다. 혐오란 대등한 관계에서 발생되지 않는다, 아니 발생될 수가 없다. 흑인이 백인을 증오할 수는 있어도 혐오할 수 없고, 비장애인의 배제에 장애인이 분노할 수는 있어도 혐오할 수는 없다. 다수의 이성애자 앞에서 소수의 동성애자가 위축될 수는 있으나 혐오할 ..
우리는 대선에서 대한민국의 탐욕을 확인했다. / 신익상 신익상 (기후위기기독교신학포럼 운영위원장) 제목 그대로다. 더는 진보니, 보수니, 수구니 잴 이유도 없다. 하긴, 대한민국에 진보나 보수란 게 정말 있기는 했는가. 대한민국의 진짜 모습은 정치적 이념을 통해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진짜 모습은 교육 ‘시장’에서 그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도 지적하듯이, 대한민국은 예전엔 산업전사를 육성하기 위해서 교육했고, 지금은 인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교육한다. 이 얼마나 개발과 성장에 유익한 목표들인가. 대한민국은 온통 성장하는데 올인하고 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아니, 누군들 잘 먹고, 잘 살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이게 비단 대한민국 사람들 뿐이겠냐는 말이다. 물론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잘 먹고, 잘..
혐오의 계곡을 탈출하기 / 김민희 김민희 (서울사는 소상공인) 대선으로 초토화된 나의 정서적 쇼크를 말하기 위해 내가 초등학교때 읽었던 한 우화로 시작하겠다. 오랜 전투 중에 보급품이 다 떨어지고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다 못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서 지휘관이 물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보급품이 무엇인가?” 병사들이 대답했다. “우리가 지금 속옷을 한 달 동안 못 갈아입었습니다. 속옷을 갈아입고 싶습니다.” 지휘관이 모든 병사들을 모이게 한 다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앞의 사람과 속옷을 갈아입도록!” 내 심정이 어떠냐고? 앞의 사람과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그 병사의 마음이다. ‘우리’라고 여겼던 ‘우리’안의 더러움도 견디기 힘든 판에 타인의 더러움까지 뒤집어 써야 하는 혐오의 계곡에서 희로애락애오욕을 담당하는 오감..
정치, 종교적 열광주의를 버려야 산다 / 김상덕 김상덕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 시끄러웠던 제20대 대선 일정은 막을 내렸지만, 난 여느 때와 같이 무거운 몸과 더 무거운 마음을 신발에 욱여넣고서 출근길을 나서야 했다. 서대문역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어제까지 그렇게 시끌벅적하던 곳이었지만 어느새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단지 조금 조용해졌을 뿐이다. 조금은 이상한 ‘일상으로의 회복’이 생경하지만 나쁘진 않다. 어제까지 이 거리를 가득 채웠던 유세현장의 고함과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을 향해 갖가지의 추파를 던지던 몸짓들, 신호들, 휘날리던 현수막과 반짝이는 전광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니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거리가 조용해지고 나니 조금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마치 우리 인생을 다 책임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