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대남

(4)
이십 대 남성이 바라보는 ‘이대남 현상’과 20대 대선, 그리고 기독교의 역할 / 이 준 봉 이 준 봉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먼저 한 가지만 일러두고 싶다. 본 글의 목적은 독자들이 하단에 링크한 발표문을 내려받고 읽도록 하는 데에 있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링크를 클릭하지 않는다면, 이 글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 글을 쓰는 의미와 정당성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본 지면에는 아래에 첨부한 발제문을 서술하면서, 또 그것을 실시간 온라인 Zoom으로 발표하면서 느끼었던 소감들을 짤막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발표 제의를 받은 날은 행사 당일로부터 약 2주 전쯤이었다. 간단하게 20대 대선을 청년의 시각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말에, 큰 부담감 없이 수락했다. 그런데 발표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내심 염려가 되었다. 내..
청년(靑年), 2021년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살아가는 일 언제부터인가 매달 한두번씩 모여 그 달의 주제를 선정하고 누가 글을 쓸것인지, 어떻게 쓸 것 인지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단골주제가 있었다. 눈치가 빠르신 분이라면 제목을 보아하니 무엇인지 알겠다 싶으실 것이다. 바로 ‘청년’이 그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청년을 이야기하는 수식어들을 열거해보면 그들의 신산한 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애와 출산을 포기한다는 N포세대라는 이름표가 붙더니,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리고 결국은 영혼까지 끌어내야만 주거를 장만할 수 있는 세대가 청년세대라고 한다. 매달 주제로 거론될 만 하다. 하지만 사건과 신학은 선뜻 청년을 주제로 선택할 수 없었다. 변명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저런 평가가 청년..
“그 어디에도 ‘이대녀’ 현상은 없다” / 신혜은 신혜은(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문화윤리) ‘젠더갈등’은 기성 정치 세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써 재생산 및 재현된다. 젠더갈등을 청년세대 특유의 담론으로 국한시킴으로써 젠더갈등의 큰 맥락을 제거해버리고, 그것을 청년세대 내 남성과 여성 간의 성별 갈등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특히 2040청년 남성층의 표심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젠더갈등 프레임을 이용한다. 이러한 양상은 젠더갈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젠더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시키고 왜곡한다. 특히 이것은 청년 여성을 어느 담론에도 끼지 못하게 이중배제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대남 현상’, ‘이준석 현상’, ‘젠더갈등’. 이러한 표현들이 사람들의 일상 대화로부터 나왔을 리는 만무하다. 이 담론들은 주로 주류 ..
프레임에 갇힌 ‘그 한-남자’의 현상 / 남기평 남기평(데나리온BANK 운영위원) 주력 야당의 30대 중반인 그 한-남자가 당대표에, 그것도 투표를 통해서 당선(?)되었다. ‘나이’만을 봤을 때, ‘연령주의’와 ‘경력주의’가 강한 정치판에서, 그리고 수구정당에서 돌파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고, 그 도전과 선택에는 박수를 보낸다. 단지, 박수만 보낼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는 그 한-남자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찾을 수 없다. 그 한-남자가 ‘연령주의’를 극복했다고, ‘경력주의’를 극복했다고 하기에는 과제들이 첩첩산중이다. 박근혜 키즈로서 주목을 받았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 한-남자에게 기대할 것은 애초에 없었다. 야당은 그 한 남자를 통해서,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이미지 쇄신’만 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새 인물만 찾는 우리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