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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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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외면당하는 낮은 목소리들’ 어느덧 3년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새해를 맞아 은 코로나 그 이면의 이야기로 안전과 방역 속에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우리는 왜 거리두기를 하고, 왜 철저히 방역을 하고 있는지 그 뜻을 잃어버린 채, 소위 “건강한 시민”이라는 정상성에 편입된 이들을 중심으로 설계된 안전조치가 작동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리고 거리두기와 방역시스템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이중 삼중으로 배제되고 가려진 낮은 이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거리를 두고, 방역을 실시하는 이유는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다. 생명과 안전을 위한 일이기에 기꺼이 거리를 두고 방역을 하는 어려움과 불편함을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생명 살림의 일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의도된 것은 아니다. 타인의 생명과 ..
홍수, 그 후 / 최철영 최철영 (원주 대표) 홍수가 나고 지진해일이 일어나면 저지대에 있는 이들부터 피해를 입기 시작하고, 재해의 크기에 따라 피해정도와 범위가 결정된다. 당연히 모든 이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평온한 곳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비용과 기회의 불평등은 누구에게나 그런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연재해만 아니라 2년여 넘게 진행된 팬데믹과 같은 사회적 홍수의 상황도 동일한 결과와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난한 이들, 힘없는 이들이 먼저 심각한 피해를 입고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지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규모가 크지 않고 제한적인 영역에서의 범람이라면 그나마라도 다른 이를 생각하고 도울 여지를 남기지만, 나도 적잖이 피해를 입었다고 여기는 순간 본능적인 방어기제는 여지없이 작동되어 자신의 문제에만 함몰되게..
어느 이주노동자 고백 -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 박흥순 박흥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3년째 지속하고 있다.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세가 급격할 때, 한국 사회 일부가 외국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을 제한하라고 강력하게 항의하며 요청했다. 이주노동자가 상당한 부분을 담당하는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 사회는 이제 이주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주노동자는 ‘사람’이란 인식보다 ‘노동력’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불편을 넘어서 무시와 배제를 받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불편을 호소했던 이주민 목소리를 듣고 쓴 글이다. 지역이나 출신국가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경험한 사례를 바탕으로 당사자가 직접 글을 작성한다고 생각하며 ..
코로나 시대에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 이혜영 이혜영 (미국장로교(PCUSA) 파송 선교동역자) 이 글은 1월 18일 화요일 저녁, 6명의 선교동역자들이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서 진행된 간담회를 토대로 재구성한 글이다. 6명의 참석자들은 미국에서 온 4명, 캐나다에서 온 1명, 그리고 일본에서 온 1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국에서 산 기간은 적게는 5개월에서 8년을 산 사람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D-6 비자라는 종교 비자를 가지고 선교 및 자원봉사라는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매달 한번씩 모여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번 달에는 코로나 시대에 외국인[i]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당을 들어가기 전 사람들은 휴대폰을 흔들어댄다. 코로나 시대에 식당..
코로나19 시대에 코이노니아를 생각하며 : 정신장애인 교우 A와의 인터뷰 / 강세희 강세희 (한국기독교장로회 한백교회, 이화여자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석사과정) 코로나19, 3년차로 접어들며…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시작되던 2020년 겨울, 나는 사건과 신학의 지면을 통해 코로나19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주일 성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에클레시아의 지향성을 성찰해야한다는 논지의 글을 2차례 기고했었다. 방역지침이 종교시설과 대면예배에도 적용되기 시작한 이래로, 예배당 중심의 ‘주일 성수’의 과정과 규모는 간소화되었다. 대신에 ‘삶의 자리’와 ‘가정’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강조하고, 온라인/미디어 예배를 활성화하는 목회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도 활발한 듯하다. ‘새로운 목회 비전’으로서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예배의 확장성을 도모하는 교회가 있는 한편, 예배와 모임을 유..
나는 불안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이준봉 이준봉(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일단 코로나19 이야기부터 해보자. 작년 초까지만 해도 나는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언젠가는 감쪽같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부와 언론은 K-방역을 외치며 항상 ‘어느 시점’을 제시하곤 했다. 낙관적인 목소리로 ‘~~때가 되면 해결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미래를 전망했다. 하지만 “코로나의 긴 터널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발언이 무색하게도 연일 코로나 확진 환자의 수는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이제 더는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변화되는 상황을 담담히 목도할 뿐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괜한 예측은 하고 싶지 않다. 희망고문과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코로나만이 우리에게 걱정거리를 던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20대 중반..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자기 기만적 거짓말에 대처하기 위하여 / 신익상 신익상 (성공회대학교,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코로나19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산불도 그렇고 지구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때아닌 폭우와 홍수, 급격한 기온 하강과 상승, 태풍과 맞먹는 강풍과 미세먼지의 습격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자연의 움직임이 인류 문명의 위엄을 밑바닥에서 흔들고 있다. 지난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주요 원인이었다. 극도로 건조해진 대기와 강풍, 최고 47℃까지 치솟은 높은 기온은 3일간 거의 쉬지 않고 내리친 1만 2천여 회의 번개와 함께 끔찍한 불놀이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20여 군데에서 산불이 시작됐고, 서울 면적의 5배 이상 되는 면적을 휩쓸었다. 코로나19로 고통을 받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