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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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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답고 복 된 발 / 황푸하 황푸하 (NCCK 신학위 사건과신학 위원,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부활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애인의 오빠는 장애인이다. 그와 결혼을 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장애인의 가족이 되었는데, 나는 그제야 장애인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나는 장애인을 혐오하거나 그들의 권리에 대해서 절대로 반대하지 않는, 도덕적으로 떳떳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힘든 수술들을 견디며 자라서 그런지 남들보다 겁이 많다. 사람들의 눈치도 많이 보고, 작은 일에도 오해가 많으며 이해가 느리다. 이동이 어렵고 두려움이 많아서 그 쉬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도 큰 소동을 치러야 했다. 내가 볼 때 이 모든 것들은 한 가족이 ..
장애인 인권운동, Zero-Base(제로-베이스)를 만드는 것 / 이정훈 이정훈 (NCCK 장애인소위원회 위원) ‘출근길 지하철 타기 투쟁’으로 인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와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만들어낸 파장, 이에 대한 이준석의 혐오 발언으로 인해 장애인 인권운동이 꿈에도 소원했던 전국구가 되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21년간이나 외쳤는데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한국 사회가 드디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장애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들어보려는 마음의 준비는 된 것으로 보인다. 먼저, 글 끝이 아니라, 글 앞에 사족을 붙여본다. 전장연이 장애인 인권운동을 모두 대변하느냐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 있겠다. 물론 아니다. 장애인 인권운동의 스펙트럼도 굉장히 넓다. 마치 한국사회 변화를 위해 투쟁했던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처럼 장애인 인권운동도 동일하다는 말이..
한국교회가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에 함께 해야 하는 이유 / 유진우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저는 4월 12일 아침 8시에 경복궁 역에서 삭발을 했습니다. 삭발한 이유는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에 대한 윤석열 인수위의 답변을 촉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는 장애인인 저에게 자신을 꾸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장애인인 저는 비장애인이 하는 취미, 운동을 하지 못해 꾸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머리를 자주 바꿔가며 개성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삭발을 했습니다. 머리보다 더 간절한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에,.. 장애인권리예산은 투쟁하지 않으면 결코 쟁취해 낼 수 없기에 삭발을 결의하고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삭발식에서는 새로운 점이 있었습니다. 새민족교회 목사인 황푸하 목사가 ‘바퀴 축복식’이라는 다소 생소한 축복식을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바퀴 축복식’이 어떠한..
장애인을 통하여 예수의 부활을 생각한다 / 홍인식 홍인식 (새길교회/새길기독사회문화원) 지난 4월 17일 주일은 부활주일이었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과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를 통하여 시작된 하나님의 혁명이 실패로 끝나지 않고 결국에는 이루어진다는 확신과 희망을 우리에게 준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이 그들의 자녀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분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어떤 고난도, 아니 죽음까지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이처럼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부활의 경험은 오합지졸과 같았던 제자들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예수의 부활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부활이었다. 예수는 유대 땅에서 한 이름 없는 유대인으로 살다 죽었..
그럼에도, 저 깊은 곳에는 / 송진순 송진순 (NCCK 신학위원) 20대 대선이 끝났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초박빙 승부에 모두가 깊은 내상을 입었다. 선거 이후 만나는 사람들도 선뜻 말하기를 꺼렸다. 실은 말 이전에 어떤 감정을 쏟아야 하는지 망설이는 듯했다. 이 상황에 대한 날 선 비판이나 섣부른 자성이 아니라 상황을 수용할만한 마음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마음 둘 자리조차 잃었다. 얼마 전 한 시사평론가는 “2012년 대선과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좌절이었지만, 지금은 위로가 필요하다”고 한탄했다. 그때는 박정희 레거시라는 큰 벽에 부딪히면서 좌절했지만 결과는 수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정치와 공동체의 바닥을 보며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20대 대선은 유세 과정에서부터 실망스러웠다. 아니 마지막까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여당은 ..
정치적 내전의 도덕적 등가물 / 정경일 정경일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대선 며칠 후, 내가 조사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연구 단체에서 대선 평가 토론을 제안해 왔다. 몸과 맘이 피폐해 있던 때라 내키지 않았지만,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지 않으려는 기획자의 열정과 회복탄력성이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토론 제목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대선관전평’... 물론 스포츠 경기나 정치적 선거 후에 관전평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후보 간, 정당 간, 국민 간 정치적, 심리적 대립과 갈등이 너무 격렬해서, 나를 비롯한 토론자들의 이야기는 ‘관전평’이 아니라 ‘참전담’일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당락을 가른 결과도 0.73%p 초박빙이어서, 승전담도 패전담도 내상 없이 꺼내기 어려웠다..
이‘놈’의 대선: ‘남혐’ 상상하기 / 김정원 김정원 목사 (향린교회, 성공회대 박사과정) 근래 “너- 남혐있어?”라는 물음을 종종 듣곤 하는데, 그 물음에 답하기 전 그 사람의 저의를 예상해본다. 이자가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은 ‘너 페미니스트야?’, 혹은 ‘너 설마 심상정 찍을꺼야?’, 그것도 아니라면, ‘너 목사가 돼가지고 세상의 반을 혐오하는 거야?’, 마지막으로는 ‘싸우자’ 정도. 대개 그들의 저의는 나의 예상 중 하나 이상에 부합한다. 저런 물음은 보통 혐오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데서 온다. 혐오란 대등한 관계에서 발생되지 않는다, 아니 발생될 수가 없다. 흑인이 백인을 증오할 수는 있어도 혐오할 수 없고, 비장애인의 배제에 장애인이 분노할 수는 있어도 혐오할 수는 없다. 다수의 이성애자 앞에서 소수의 동성애자가 위축될 수는 있으나 혐오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