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325) 썸네일형 리스트형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들을 돌아보며... / 이영미 이영미 (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새가정 총무) 디어 마이 프렌즈! 2016년에 방영되었던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제목이다. 소설가인 박 완(고현정)이 엄마(고두심)의 친구들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하고, 황혼을 보내는 이들의 삶을 적어가는 드라마다. 감동과 울림을 주는 여러 장면이 있지만, 그 가운데 잊지 못할 장면은 딸 완이가 30년 동안 꾹꾹 묻어왔던 이야기를 울분을 터뜨리며 엄마 장난희를 향해 분노하는 장면이었다. 딸 : 앞으로 내 인생에 끼어들지마. 엄마 : 끼어들면? 끼어들면? 엄마가 니 인생에 끼어들면 어쩔건데, 이 기집애야! 딸 : 난 엄마꺼니까, 엄마가 하지 말라는 짓은 못하지... 여섯 살 때, 할머니 집 앞 들판에서 약 먹였을 때, 나는 분명히 알았거든. 난 엄마꺼구나, 그러니까 무서워도 .. 시끄러운 세상, 푸릉이라는 판타지 / 송진순 송진순 (NCCK 신학위원) “여기 서울 아니라 제주. 옆집에 빤쓰 쪼가리가 몇 장인지, 숟가락, 젓가락이 몇 짝인지도 아는!” 부스스한 단발머리, 청바지에 목장갑을 끼고 거침없이 생선 대가리를 쳐내는 은희(이정은)의 말이다. 는 제주의 푸릉 마을에서 살아가는 억척스럽고 짠내나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후텁지근한 폭염 한가운데서 6월 은 쏟아지는 사건들을 잠시 밀어내고 기꺼이 드라마를 선택했다. 매체마다 경쟁하듯 토악질해내는 보도 기사들의 가벼움을 견디기 어려운 탓도 있지만, 이 세상이 인간의 ‘–다움’을 주저없이 포기하는 것을 대면하기 힘든 탓이 더 크리라 싶다. 배영미 선생님의 글처럼 우리는 지금 혼돈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정치든 경제든 끝없는 추락의 늪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되잡고 숨 고르.. 우리들의 블루스 – 이 서러운 세상의 따뜻한 해방구 / 배영미 배영미 (기독여민회 홍보출판위원장) 혼돈의 카오스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임신 중단과 관련한 판결을 뒤집는 바람에 미국 여성들의 임신 중단에 대한 결정권이 사실상 박탈된 날, 상원에서는 총기규제 최종안이 가결되었다. 허술한 의료보장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 죽어가는 나라에서, 숱한 총기 난사로 인해 수많은 이들의 삶이 갑자기 중단되는 나라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의 결정권을 제한하다니 참으로 혼란스러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불의한 전쟁과 강대국의 탐욕으로 세계 경제는 바닥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고, 일본의 전시 성노예제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독일 미테(Mitte) 구에 설치된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는 없었다”며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극우 단체 인사들.. 왜 그 드라마 속 여성들은 불쌍하거나 불행할까? / 오수경 오수경 (청어람ARMC 대표 · 저자) 최근 종영한 드라마 (tvN)에서 은희의 친구이자 마을에서 함께 자란 미란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란은 세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서울에서 홀로 마사지 샵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유럽에서 살고 있는 첫 번째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약속한 여행이 좌절되자 제주행을 택한다. 유난히 마을 주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그가 오자 그의 동창부터 마을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그를 반겼다. 하지만 그를 반기는 이들의 진심은 어쩐지 텁텁하기만 하다. 남자 동창들은 그를 환영하며 추앙하는 듯 굴지만 사실은 잠깐 즐기려 할 뿐이지 그를 깊이 대하지 않는다. ‘결혼을 세 번 한 방탕한 여자’라는 평판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후려칠 뿐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않는.. 우리들의 블루스: 옥동의 유산 / 이민형 이민형 (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 노희경 작가의 세상 읽기가 모두 녹아들어간 듯한 드라마, . 누군가에게 벅찬 감동을 준만큼 누군가에게는 실망감을 주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큰 깨달음을 얻게 한 만큼,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마음이 들게도 한 작품이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이야기에는 호소력이 있었고 그만큼의 설득력도 있었다. 다루고 싶은 주제가 무척이나 많았지만, 이 글에서는 단 한 가지의 주제를 중심으로 단 한 명의 등장인물만을 살펴보려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흔히들 성서에 기록된 구절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출처는 모호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구절이라고도 하고, 마하트마 간디가 인용한 명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 출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작 이 구절을.. 오래된 질문을 멈추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자. / 이혜영 이혜영 (미국장로교(PCUSA) 파송 선교동역자) 새로 이사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한 주민 분이 이미 타고 있던 나와 아들을 반갑게 바라보시며 “이사를 왔냐”, “어디서 왔냐” 등등의 질문을 이어 가신다.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는 새 이웃이기 때문에 나도 상냥하게 대답을 했다. “아이는 하나예요?”라고 물으신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은 시선을 우리 아이에게 돌리시면서 “엄마한테 얼른 동생 낳아달라고 말해”라고 이야기하신다. 마침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을 했고 그 분은 자신의 갈 길은 유유히 떠나셨다. 사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아이가 하나라고 이야기 했을 때 늘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질문은 “둘째 얼른 낳아야지. 하나는 외로워”라는 말이었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우리 사회가.. 우리는 졸지에 ‘비정상 가족’이 되었다 / 박새롬 박새롬 (순천덕신교회) 1 “가족이 함께 살아야지 떨어져 사는 건 비정상 아닌가?” 내 삶에서 ‘비정상’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시부모님과 시누이 가족들 나와 아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우리 가족을 ‘비정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많은 사람이 걱정하며, ‘언제 남편 있는 곳으로 이사 가느냐?’ ‘남편과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수백 번의 질문에도 내적 평화로움을 가지고 답할 수 있는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비정상’이라는 단어에 나의 평화로움은 깨어졌다. “요즘 세상에 정상, 비정상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감수성 없는 일이지 않나?” 나는 결코 평화롭지 못한 방식으로 ‘네가 한 말에 부끄러움을 주겠노라’는 마음으로 맞받아쳤다. 우리..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47 다음